음악이야기

[스크랩] Debbie Gibson

유자유농원 2011. 7. 17. 14:14
Debbie Gibson

Think With Your Heart
글 / 김방섭(뮤직 라인, 1995년 6월)

▶ 지난 1980년대 후반 16세의 나이로 데뷔하여 빌보드 핫100 싱글 챠트 4연속 Top 10 히트를 기록하며, 당시 티파니와 함게 최고의 하이틴 스타로 인기경쟁을 벌였던 데비 깁슨. 1992년 발표한 4집 <Body Mind Soul>의 홍보차 1993년 5월 내한하기도 했던 그녀는 이제 1995년 23세의 나이로 5집 <Think With Your Heart>와 함께 더욱 성숙해지고, 예측하지 못했던 다양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 데비는 그동안 소속 음반사이던 아틀랜틱을 떠나 EMI 산하의 레이블 SBK로 이적하며 면모일신을 꾀했다. SBK는 1990년대의 화제의 여성 트리오 윌슨 필립스와 "제 2의 엘튼 존"이라 평가받는 죠수아 카디슨 등의 앨범을 발매한 젊은 레이블이다. 음반사 이적과 함께 데비는 음악적으로도 놀라운 시도를 했다. SBK 데뷔 앨범인 5집에서 그녀는 The London Session Ochestra와 The Cover City Cats의 혼 섹션과 함께 녹음한 것이다. 클래식, 그리고 재즈에 접근한 데비의 시도가 놀랍다.
▶ 롱 아일랜드 태생 싱어/송라이터/피아니스트인 데비(Deborah Gibson)은 5세 때부터 피아노를 능숙하게 연주했고, 곧 작곡도 해내는 "음악의 신동"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12세 때 "I Come From America"라는 곡으로 라디오 방송 작곡경연대회에서 우승하며 팝 스타의 꿈을 키우게 되었다. 데비의 부모가 딸을 데뷔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롱 아일랜드에 사는 부모는 뉴욕의 유명한 연예전문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딸의 재주가 보통이 아니며, 13세인 지금 직접 작곡한 곡만도 수백곡이니 딸을 음악가로 키워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하루에도 수없이 스타가 되겠다는 전화에 지쳐있는 변호사는 13살짜리가 수백곡을 작곡했다는 것을 헛소리로만 생각하고 제의를 거절했다. 하지만 부모의 노력은 결국 변호사의 마음을 돌렸고, 변호사는 데비의 놀라운 음악적 재능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후 부모는 집에 스튜디오를 마련해 주었고, 데비는 3년간 노래/작곡/연주는 물론 앨범 제작에 대한 엔지니어링과 프로듀싱 등 기술적인 면까지 철저히 공부했다.
▶ 데비가 데뷔하던 당시에는 마이클 잭슨의 동생인 19세의 쟈넷 잭슨, 멕시코 태생인 16세의 글렌 메데이로스, 그리고 15세인 티파니가 하이틴 스타로 막 인기를 얻고 있었다. 특히 겨우 15세인 티파니의 1987년 데뷔앨범은 빌보드200 앨범 차트 1위 (1988.01)를 기록했는데, 이 앨범에서는 싱글차트 2주 연속 1위곡 "I Think We're Along Now"(1988.11)와 "Could've Been"(1988.02)이 히트하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상황에서 데비도 1987년 데뷔앨범 "Out Of The Blue"를 발표하여 4주 연속 톱10 히트인 두 개의 4위곡 "Only In My Dreams"와 "Shake Your Love", 그리고 1988년 3위곡인 "Out Of The Blue"와 1위곡인 "Foolish Beat"(1988.06) 등을 히트시켰다. 1980년대 후반 두 소녀 싱어 티파니와 데비의 선두다툼은 대단한 관심거리였다. 데비의 1989년 2집 "Electric Youth"는 앨범차트 1위(1989.03)를 기록했다. 2집에서는 "Lost In Your Eyes"가 싱글차트 두번째 1위(1989.03)에 이어 타이틀곡이 11위를 하고 "No More Rhythm"이 17위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성인선언을 하며 1990년에 발표한 3집 "Anything Is Possible"은 1,2집보다 저조한 히트에 그치고 말았다. 데비처럼 티파니 역시 1990년대에 들어서는 히트곡이 없는 실정이다. 두 하이틴 스타의 선두다툼은 이렇게 무승부로 끝난 것 같다. 이후 티파니는 1990년 결혼과 출산 등으로 공백기에 있다가 1993년 3집 "Dreams Never Die"를 발표했다. 그리고 이 앨범의 홍보차 1989년 전국순회 내한공연에 이어 남편 가르시아 Jr.와 함께 1993년 12월 두번째로 내한하기도 했다. 일찍 결혼한 티파니와는 달리 다재다능한 재능을 겸비한 미모의 데비는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Les Miserables"에 출연하여 재능을 과시하였는데, 이전에도 TV 드라마 "The Wonder Years"의 음악을 담당했는가 하면 영화 "Skirt"에서는 음악은 물론 연기까지 해보인 바 있다.
▶ 데비의 1992년 4집 "Body Mind Soul"은 히트 작곡/제작/연주 컴비인 칼 스터큰/이반 로저스가 지원했다. 칼 스터큰/이반 로저스 컴비는 폴라 압둘과 케린 화이트 등 많은 수퍼스타를 배출해낸 장본인. 1991년에는 6인조 리듬&블루스 밴드인 리듬 신디케이트를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는데, 데뷔 앨범에서 커트된 "P.A.S.S.I.O.N"은 싱글 차트 2위(1991.08)를 기록하기도 했다. 4집은 칼 스터큰/이반 로저스 컴비의 지원으로 인한 리듬&블루스 성향이나, 무척이나 달라진 데비의 음악적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유행의 흐름에 따르며 다양화된 그녀의 능력이 잘 드러난다. 한편 데비는 티파니가 두번째 내한하던 해인 1993년 5월 4집의 홍보차 내한하기도 했다. 그녀는 아마도 이번 5집의 홍보차 티파니처럼 다시한번 우리를 만날 것으로 보인다.
▶ 다재다능한 데비가 제작/프로듀스/피아노(Baldwin) 연주를 해낸 5집에는 리메이크 1곡을 포함하여 모두 12곡이 수록되었다. 첫 싱글로는 데비의 유려한 보컬이 아주 매끄럽게 들리는 성인취향의 "For Better or Worse"가 커트되었다. 첫 싱글을 비롯 5집의 주요곡으로는 먼저 "Will You Still Love Me?"를 꼽을 수 있다. 이 곡은 1970년대 전반이 전성기였던 포크 싱어/송라이터 캐롤 킹(남편인 게리 고핀 작사)의 곡으로 그녀의 1971년 대표 앨범인 명반 "Taperstry"에 수록되었고, 그녀의 곡을 받아 그녀에 앞서 발표한 셔릴즈의 노래로 1961년 싱글 차트 1위, 이어 포시즌스의 리메이크로 1968년 24위, 로버타 플랙의 리메이크로 1972년 76위, 멜라니의 리메이크로 1973년 82위, 다나 밸러리의 리메이크로 1976년 95위, 데이브 메이슨의 리메이크로 1978년 39위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다투어 리메이크해 온 고전이다. 이 곡이 이번에는 "제 2의 캐롤 킹"이라 할만한 데비에 의해 다시 한번 히트할 준비를 끝냈다. 이외에도 5집에는 너무도 곱고 가녀리며 감미로운 바이올린 선율이 전주로 된 "Didn't Have The Heart", 놀랍게도 데비가 오케스트라와의 직접적인 협연을 들려주는 타이틀곡과 "Let's Run Away", 스티브 로센이 재즈 피아노를 연주한 스윙 재즈 "Too Fancy", 그리고 전형적인 데비의 스타일 "Your Don't Have To See", 와 "Two Young Kids"등이 수록되었다.
▶ 1987년 16세의 나이로 데뷔한 데비는 벌써 5집을 발표했다. 그래서인지 그녀를 꽤나 오랜 경력의 베테랑 쯤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대부분 아티스트들이 막 데뷔하는 나이인 23세(1995년)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이 소녀(?)가 음악적 실험과 변신을 시도할 여유가 얼마나 많은가?

♡~ 상일이 Debbie Gibson에게 관심을 갖게된 것은 <Electric Youth>를 듣고 나서였다. 외모나 홍보전략으로 인기를 누리는 반짝 하이틴 스타와는 달리 Debbie Gibson에겐 진정한 재능과 자신감이 느껴진다.

For Better or Worse

출처 : ♣요요와 친구들 방
글쓴이 : 요요2001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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